하세희
 
 
           하세희(河世熙)
 
 
하세희 효자 정려
소재지: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사곡
 
   1647년( 仁祖 25) - 1686년 (肅宗 12)
자(字)는 호여(皥如)이요, 호(號)는 석계(石溪)이니 경상도사를 지낸 송정 하수일(河受一)의 현손이며 억(檍)의 아들이다. 공公은 17세의 나이로 대대로 살아오던 정곡을 떠나 진양 하씨의 집성촌인 진주 수곡면 사곡으로 이주해 터를 잡았다.  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모시면서 애척이 지극하고 동지가 예법에 맞았다. 당시 진주 목사가 「맹종읍순」 이라는 시제(詩題)로 선비들에게 시험을 보였는데, 세희(世熙는) 답으로 시 한 구절을 짓기를 지금 맹종 같은 사람이 없으니 누가 겨울 죽순을 구하려고 눈물을 흘리며 누가 겨울철 죽순을 얻겠는가,」 라고 하였다. 목사가 답 내용을 살펴보고 효자라고 하고 후인들도 그 시를 보고 효자라고 하였다.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어머니 봉양에 잠시도 소홀함이 없이 매회 어머니가 드시는 음식을 맛을 살피고 겨울에도 목욕하고 정화수를 떠놓고 어머니의 쾌유를 빌었다.
이를 본 마을 사람들은 그의 지극한 효성에 감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복을 마친 후에도 죽으로 식사를 하면서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어사 이이만(李以晩)이 그 효행을 조정에 장계를 올려 1710년에 정려를 내렸다. 정려는 예전에 구 대각서원 앞에 있었는데 후손 감역 재곤(載崑)께서 이전하여 지금은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사곡에 있다. 하계 이가순(霞溪李家淳) 이 지은 정려기와 유고가 있다.
 
1. 효자전(孝子傳)
 
처사는 은둔군자로서 이름은 세희世熙, 자字는 호여 요, 성은 하씨이다. 하씨는 진양의 망족으로 선대에는 각재와 송정 두 어진 분이 계시어 학식과 행실로써 후배의 스승이 되어 한 사당에 제사를 같이 지내었다. 송정선생은 바로 각재선생의 종질로서 처사에게 고조가 된다. 처사는 극진한 성품이 있어 8-9세 때 자식子息으로서 어버이를 섬겨야 된다는 도리를 이미 알았다. 조모께서 연로하니 어린아이처럼 잘 보살피어 잠깐도 곁을 떠나지 않았고, 음식을 봉양할 때에는 모두 맛을 본 이후에 음식을 올렸다. 하루는 조모의 병환이 위독해지자 처사는 손가락에서 피를 내어 조모에게 마시게 하여 목숨을 연장할 수 있었다. 이때 처사의 나이가 겨우 14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혀를 차면서 탄식하기를 참으로 효자로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조모를 섬기듯이 또한 어머니를 섬겼다. 어머니를 모시던 중 병환이 위독해지자 수개월 동안 옷을 벗지도 않고 제대로 잠도 자지 않고서 시종연일 극진히 섬겼다. 어머니의 대변을 살피고 병의 차도를 알아보았다. 상을 당하여 습렴(襲殮)을 하고 고인의 예법에 따라 장사를 지냈다. 여묘 살이를 할 때 죽을 마시며 3년을 지냈으며 3년 동안 여막 밖을 나가지 않았다. 상기가 끝난 뒤에 제사를 받들 때에도 또한 그렇게 하였다. 주상 전하께서 이 효행을 듣고 정려를 하사하도록 명을 내렸다. 거주하는 마을은 동쪽 대각서원 큰길 곁에 있었다. 처사는 간결하고 단아하면서 엄정하였다. 평생 벼슬길에 나가기를 바라지 않았으며 자연 속에서 즐거이 지내며 날마다 독서하며 즐겼다. 말씀이 겸손하고 행실은 뜻이 고상하고 지조가 굳건하였다. 보는 사람들이 존경의 마음을 일으켜 후덕한 어른이라고 서로들 칭찬하였다. 사람들이 매양 ‘내가 불행히 늦게 태어나 고인古人을 직접 보지는 못하였지만 이른바 고인이라는 분도 반드시 옛날에 이분 같았을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 마음속으
로 존경해 마지않았다. 지금 처사가 이미 돌아가셨으니 아! 이와 같은 분을 이 세상에서 어떻게 다시 볼 수 있는가? 우선 평소에 본 바로서 기록하여 서산 하효자 전을 짓는다.
                                                                                                                                     박태무朴泰茂 撰
 
孝子傳
 
處士隱居君子名世熙字皡如姓河氏河氏晉陽望族先世有覺齋松亭兩賢者以學識行誼爲後輩師一廟而俎豆之松亭卽覺齋之從姪而於處士爲高祖處士有至性自八九歲時己知爲人子事親之道祖母年老保之如嬰兒未嘗頃刻離側甘旨之供皆嘗而後進一日有疾症劇處士血其指而得廷齡時年十四人莫不嘖嘖歎曰眞孝子也事母亦以事祖母者事之侍末疾不解衣不交睷者累月而至誠終始如一日必嘗糞以驗其差劇比喪襲歛而葬之如古人之禮守盧墓側歠粥三年三年不出盧外除喪奉祭亦然 上聞之 命旌表其閭閭在所居里之東大覺大路傍處士簡潔端嚴平生不求仕進樂居巖泉日讀書自娯言遜而行潔志高而操確觀者起敬交口稱厚德長者余每曰吾不幸生晩不及見古人然所謂古人者必古之如此老者也心愛之不己今處士己亡嗟呼如斯人者斯世安得復見姑以平日所見者而記之爲西山河孝子傳                                       朴泰茂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