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정사道谷精舍
27. 도곡정사道谷精舍
                       

 소재지 : 진주시 금곡면 검암리
 
   도곡정사는 효자孝子인 진사進仕 재원載源 공의 후손들이 공의 정려旌閭 표창表彰을 기리고, 그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후진들을 가르치던 곳이다. 정려는 1905년 高宗乙巳 5월 2일에 내려졌고, 손자인 해룡海龍이 정려각을 세웠다. 정사精舍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몸채는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목조 팔작지붕의 기와집이고, 문간채는 세 칸으로 되어 있으며, 아래채는 심하게 낡았다.
  건물 안에는 증손 순정舜楨이 집을 짓고 그 기쁨을 읊은 시와 정면규鄭冕圭의 〈道谷精舍贊〉, 1911년 안동인 권운환의 〈道谷精舍記〉, 1932년 송산松山 권재규權載奎 찬 〈道谷精舍 重建記〉등의 시와 기문이 있다.
 
1) 도곡정사 기
   진주 남쪽 30리에 영천潁川이라는 강이 있다. 산이 두류頭流에서 나와 동쪽으로 구불구불하게 벋어 강에 이르러 그쳤다가, 되돌아가서 오묵한 곳을 만드니 도곡道谷이라 이르는데, 근세近世의 효자이신 고故 하공河公이 살던 곳이다. 공이 일찍이 자호自號하여 도곡道谷이라 하였으니 지명地名에 연유한 것이다. 공이 졸하자 집 앞의 산에 장사지냈는데, 그 산아래에 정려 각이 우뚝하여 사람의 이목을 환하게 하니, 곧 공의 효성을 표창한 정려旌閭이다. 정려 곁에 한 재실齋室이 있어 도곡정사라고 편액을 걸었으니, 공의 뜻을 잇고, 겸하여 자손들이 학문을 닦는 곳이다. 하루는 공의 장증손長曾孫인 순정舜楨이 운환雲煥에게 기문을 청하였다. 생각건대, 내가 친구의 아들로서 일찍이 공에게 사랑을 받았으니, 감히 사양할 수 있겠는가? 가만히 생각하니, 공의 효성은 한결같이 본성에 따른 것이지, 억지로 힘써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으니, 비록 평범하고 사소한 일이라도 매우 간절懇切하여 사람을 감동시켰다. 태학太學에 들어간 후 벼슬에 천거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으나, 연로한 어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할 뿐, 절대로 다른 마음을 갖지 않았다. 대체로 공의 생각인즉, 오늘 어버이를 이별하고 내일 만종록을 얻는 것은 반드시 하지 않겠다는 것이니, 이른바 고인古人이 하루 부모를 봉양하는 것을 삼공三公과 바꾸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 진실하고 절실한 말임을 공에게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무릇, 사람의 마음이란 잠깐 동안에는 행하기 쉽고 오랫동안 행하기는 어려운 법인데, 공이 행하여 사람들에게 보인 것은, 하루도 행하기 어려운 것을 일생을 하루같이 행하였으니, 소위 열심히 시중들다가 죽음에 이르고 종신토록 사모한다는 것을 공에게서 볼 수 있다. 종족宗族과 살고 벗들과 사귐에 좌우에서 근본을 따르고 각각 그 적의適宜함을 얻었으니 하나같이 이 모두가 효孝에 기인基因한다. 오호라, 오랑캐가 들어와 야만인이 된 오늘날, 만약 공에게 임금을 섬기게 했더라면, 참으로 정성을 다하여 천지신명을 감동시켜 대의를 펼쳤을 것인데, 공를 저승에서 불러올 수 없는 것이 한恨이다.
 공의 후손된 자는 과연 자기 몸의 소중함을 알아서 오랑캐와 짐승처럼 되지 않게 하고 공의 효성을 뒤따른다면, 근원이 깊고 적덕積德이 두터워서 멀리까지 발흥發興하고 더욱 빛날 것이다. 내 이 수 칸 정사精舍가 산수山水와 시종始
終을 같이 할 것을 아니, 이것은 공의 정신을 후손들이 잘 계승하는 데 있으니 명심할 것이다.
                                                             권운환 찬
道谷精舍記
晉治南三十里有水曰潁川山自頭流來東馳逶迤至川而止回而爲奧區者曰道谷近故孝子河公之居也公嘗自號道谷蓋因地也公卒葬於家前山趾山而有烏頭巋然照人耳
目卽公表孝之旌旌之旁有一齋扁以道谷精舍盖所述公之志而兼而爲子孫肄業之所也一日公之嗣孫舜楨請雲煥記之念余以故人穉子亦嘗蒙眷於公敢辭也哉竊以爲公之孝一於性而非勉强然者以故雖尋常微細事到底惻怛亦足動人自升庠後不無引薦
之人爲親老致養絶無求外意盖公之心則今日離親而明日萬鍾必不爲也所謂古人一日養不以三公換者於公始知爲眞切語也夫人之情易語暫難於恒久若公之爲以人觀之一日爲難而一生如一日所謂服勤至死所謂終身慕者亦於公見之矣以至處宗族交朋友左右逢原各得其宜一是孝之推也嗚呼當此夷降獸食之日如使公得以事君則眞誠所到必有感天地動神明一番大義理矣恨不得起公於九原也 爲公後承者果能識得此身之重使不陷於夷獸之歸而聿追公孝則根之深積之厚其必發之遠而益有光矣吾知此數間精舍將與流峙相始終此則在厚承已矣念之哉
                                                              權雲煥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