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석루기矗石樓記
촉석루기矗石樓記
 누대樓臺를 경영하는 것은 치자治者가 여가에 하는 일일 뿐이지만, 그 존폐存廢로써 인심과 세도世道를 볼 수 있다. 세도世道의 성쇠盛衰와 인심의 애락哀樂은 같지 않지만, 누대樓臺의 존폐存廢는 세도의 성쇠盛衰와 인심의 애락哀樂에 따른다. 무릇 한 누대의 흥폐로써 한 고을의 인심을 알 수 있고, 한 고을의 인심으로 한 시대의 세도世道를 알 수 있으니, 어찌 여가에 하는 일이라 하여 소홀히 여길 수 있겠는가? 내가 이런 말을 한 지가 오래되었는데, 이제 내 고향의 촉석루로 더욱 믿게 되었다.
 촉석루矗石樓는 용두사龍頭寺 남쪽 석벽石壁 위에 있다. 내가 옛적 소년시절에 여러 번 올라보았는데, 누대의 제도가 크고 넓으며 앞이 틔어 밝았다. 굽어보면 아득히 긴 강이 그 아래로 흘러가고, 많은 산봉우리가 바깥에 늘어섰다. 여염閭閻과 상마桑麻와 정자亭子와 꽃나무들이 그 사이에 은은하게 비치고, 푸른 바위와 붉은 언덕, 긴 물가와 비옥한 전원田園이 그 옆에 잇닿아 있다. 사람들이 풍기는 기운은 맑고, 풍속은 돈후敦厚하여 노인들은 편안하고 젊은이들은 여유롭다. 농부農夫와 잠부蠶婦는 부지런히 일하고, 효자孝子와 효부孝婦는 힘을 다해 봉양한다. 방아노래가 거리에 이었고, 오르내리는 어부들 노래는 단애斷崖에 장단을 맞춘다. 새들은 울며 날아 숲속에서 자족自足하고, 어별魚鼈은 유영遊泳하며 촘촘한 그물 걱정 없으니, 만물이 한 구역을 이루어 살 곳을 얻었으니 모두가 볼 만하다. 무성한 꽃과 녹음,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 계절 따라 이르러, 쇠衰하면 성盛하고 차면 비워지는 이치와 어두웠다가 밝아지고 그늘졌다가 개는 변화가 서로 교대하여 그치지 않으니 즐거움이 또한 무궁하였다.
 또, 그 누각을 명명命名한 뜻은 담암淡庵 백白 선생의 기문에 대략 말하기를, 강 가운데 돌이 우뚝 높이 솟아 누각樓閣을 짓고 촉석矗石이라 했는데, 처음 김공金公이 착수하고 이어 안상헌安常軒이 완성하였다. 두 분이 다 장원壯元을 하였으므로 겸하여 이름이 났다고 하였다. 편액에 걸린 유명한 시에는 면재勉齋 정鄭선생의 배율 육운排律六韻과 상헌常軒 안安선생의 장구 사운長句四韻이 있다. 또 운은耘隱 설偰선생의 여섯 절구絶句가 있는데, 이 운韻에 화답하여 이은 사람은 급암及庵 민閔선생, 우곡愚谷 정鄭선생, 이재彛齋 허許선생인데 모두 가작佳作이니, 선배先輩들의 풍류風流와 문채文彩를 상상해 볼 수 있다. 불행하게도 고려 말엽에 백사百事가 쇠퇴하여 변경 방비도 해이해지고, 왜구倭寇가 깊숙이 침입하여 백성들이 도탄塗炭에 빠지고 촉석루 역시 불탔다.
 하늘이 조선을 도와 성자신손聖子神孫이 서로 계승하여 정치와 교화가 밝으니, 은택이 나라 안에 젖어 들었으며 위엄이 해외에까지 떨쳐, 전일에 도적질하던 무리들이 관문을 두드려 항복을 빌고 연이어 보물을 바쳤다. 바닷가 토지가 날로 개척되어 사람들이 다시 가득하고, 홀아비와 과부 등 불쌍한 백성들도 배불리 먹으니, 백발노인들이 술잔을 기울이며 서로 경하하여 말하기를, 오늘날 우리 눈으로 태평한 세상을 볼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하였다. 그러나 임금은 오히려 치적治績이 부족하다고 여겨 매양 하교下敎하여 백성들의 사역使役을 금지하니, 수령들이 농잠農蠶과 학교에 관한 일 외에는 감히 한 가지 일도 함부로 하지 못했다. 진주 고을의 부로父老 전 판사判事 강순姜順, 전 사간司諫 최복린崔福麟 등이 여러 부로父老들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용두사와 관아가 처음 서로 터 잡은 곳에 촉석루를 세워 한 지방의 절승지絶勝地가 되었다, 옛 사람들이 사신使臣과 빈객賓客들을 받들어 마음을 즐겁게 하여 화기和氣를 맞이하고 그 혜택이 고을 백성들에게 미치게 하였는데, 허물어진 지 오래이나 중건하지 못한 것은 우리 고을사람들의 공동 책임이라 하고, 이에 각각 재물을 추렴하여 용두사 주지住持 단영端永으로 일을 주간主幹하게 하였으며, 내가 이 일을 임금에게 아뢰어 금禁하지 말라는 교지를 받았다. 임진년 12월에 판목사判牧使 권공權公 충衷이 부임하여 판관判官 박시혈朴施絜과 함께 여러 부로父老들의 말을 들어 그 이듬해 봄 2월에 제방堤防을 축조하는데, 사람들을 나누어 대오를 짓고 한 대오마다 한 무더기씩 쌓아 고향 마을의 오래된 근심을 제거하고, 10일이 안되어 마쳤다. 이에 자급自給이 안 되는 사람들을 도우고, 일 꺼리가 없어 놀고 있는 수십 무리를 모아 부지런히 힘쓰게 하여 9월에 낙성落成하니, 높은 누각이 새롭게 되어 훌륭한 모습이 예전과 같았다. 이제 판목사 유공柳公 담淡과 판관 양시권梁施權이 부임하여 단청丹靑을 하였고, 또 올라 보고 관개灌漑를 꾀하여 수차水車를 만들고 둑을 쌓아서 백성들의 이로움을 높였다. 부로父老들이 그 전말顚末을 갖추어 나에게 청하여 말하기를, 강둑을 쌓고 촉석루를 세운 것이 다 그대가 지획指劃하여 이루어졌고, 더구나 임금의 특지特旨를 받아 고을을 영광스럽게 빛낸 것이 지극하며, 몇몇 군자君子가 백성들을 위해 염려함이 근면하다 할 만하니, 어찌 기문記文을 지어 유전遺傳하려 하지 않느냐고 하였다.
내가 말하기를, 이것은 모두 부로父老들의 뜻에 기인基因한 것이니 돌이켜 보면 내가 한 것이 무엇인가? 그러나 인심과 세도世道를 기쁘게 하며, 또 부로父老들의 뜻에 감격한 것이 있어 삼가 전후사前後事의 견문見聞을 쓴다고 하였다.
 가만히 생각건대, 이 누각에 오르는 자는 물가에 풀이 처음 나는 것을 보면 천지가 만물을 생장生長시키는 마음을 생각하여, 조금이라도 불인不仁한 고통을 주어 백성을 해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전답田畓의 싹이 자라는 것을 보면 천지가 만물을 자라게 하는 마음을 생각하여, 조금이라도 불급不急한 일에 힘써 백성들의 농사철 기대를 빼앗지 않을 것을 생각하며, 동산의 나무에 열매가 맺은 것을 보면 천지가 만물을 성취시킨 마음을 생각하여, 조금이라도 옳지 않은 욕심으로 백성들의 이익을 침탈侵奪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고, 타작마당에 곡식이 쌓인 것을 보면 천지가 만물을 길러낸 마음을 생각하여, 조금이라도 법에 어긋난 추렴으로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지 않을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을 미루어 더욱 확충擴充하여 자신만 홀로 즐겁게 하지 않고 반드시 백성들과 같이 하려 한다면, 사람들이 모두 세도世道가 화평하고 인심이 즐거운 것이 실로 임금의 덕이 심후深厚한 데에 근원根源하였음을 알고 모두 화봉인華封人의 축수祝手를 본받기를 원할 것이니, 부로父老들이 성심誠心을 다해 누각을 다시 일으킨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내가 다행히 치사致仕할 날이 가까우니, 필마匹馬로 고향에 돌아와 여러 부로父老들과 매양 좋은 날에 이 누상樓上에서 잔盞을 기울여 시를 읊으며 함께 즐기고, 그 즐거움으로 만년晩年을 마치고자 하니 부로父老들은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矗石樓記
樓觀之經營爲治者之餘事耳然其廢興可以見人心世道矣世道有升降而人心之哀樂不同樓觀之廢興隨之夫以一樓之廢興而一鄕之人心可知矣一鄕之人心而一時之世道可知矣則亦豈可以餘事而所之哉余爲此說者久矣今於余鄕之矗石樓益信之矣樓在龍頭寺南石崖之上余昔少年登望者屢矣樓之制宏敞軒豁俯臨渺茫長江流其下衆峯列于外閭閻枽麻臺榭花木隱映乎其間翠巖丹崖長洲沃壤相接于其側人氣以淸俗習以厚老者安少者趍農夫蠶婦服其勤孝子慈婦竭其力舂歌連巷而俯仰漁歌綠崖而長短禽鳥鳴翔能自知於茂林魚鼈游泳亦無厄於數罟物於一區而得其所者俱可觀矣至若繁英綠陰淸風皓月以時而至消長盈虛之化晦明陰晴之燮相代而不息樂亦無窮矣且其名樓之義則有淡庵白先生之記其略曰江之中有石矗矗者搆樓曰矗石始手於金公而再成於安常軒皆壯元也因是有兼名焉題詠之美則有勉齋鄭先生之排律六韻常軒安先生之長句四韻亦有耘隱偰先生之六絶句和韻而繼之者有若及庵閔先生愚谷鄭先生彛齋許先生皆佳作前輩之風流文彩因可想見矣不幸前朝之季百度陵夷邊備亦弛海冠深入民墜塗炭樓亦煨燼矣天啓國朝聖神相承治敎以明恩濡境中威振海外向之爲冠者扣關乞降絡繹而獻琛濱海之地日以闢人烟再密鰥寡含哺班白之老酌酒而相慶曰不圖今日眼見昇平然 上心猶以爲吾治未足每降敎旨禁用民力守令於事涉農桑學校之外不敢擅興一役鄕之父老前判事姜順前司課崔福麟等與諸父老議曰龍頭寺邑初相地之所置矗石爲一方之勝景昔之人所以奉娛使臣賓客之心以迎和氣而惠及鄕民者也廢之久不能重新是吾鄕人之所共爲責也乃各出財使鄕之僧奠香龍頭寺者端永幹其事余以此聞于上得蒙下旨勿禁歲壬辰冬十二月判牧事權公衷至與判官朴施絜採諸父老之言越明年春二月修築江防分民作隊隊各一堆以除田里積年之患不十日而畢乃於是助其不給召集游手者數十輩俾勤其力至秋九月而告成危樓聿新勝觀如舊今判牧事柳公淡判官梁施權繼至而赭堊之且因登覽謀所以灌漑者造水車築堤堰以興民利父老具其始末請於余曰江防之築矗石之營皆子之指晝而樓成之況蒙特旨榮耀一鄕者至矣數君子之爲民慮亦可謂勤矣盍爲記以示不泯余曰此皆由於父老之志顧余何有焉然旣以人心世道爲喜且於父老之意有感焉謹書前後之見聞者云且夫竊惟登是樓者見汀草之始生念天地生物之心思不以一毫不仁之慘而害民生見田苗之方長念天地長物之心思不以一毫不急之務而奪民時望園木之始實念天地成物之心思不以一毫非義之欲而侵民利見場圃之方積念天地育物之心思不以一毫非法之歛而掠民財推是心而擴充之不敢獨樂於己而必欲與民同之則人皆知世道之和人心之樂實源於上德之深厚而皆願效於華封人之祝矣則父老之拳拳焉用意而興復者夫豈偶然哉余幸致仕之日己近思欲匹馬還鄕與諸父老每於良辰勝日觴詠於樓上同樂其所樂以終餘年父老其待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