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글쓴이 : 진양하씨대…     날짜 : 13-08-05 13:17     조회 : 630    
◉ 高麗時代 人物
   ◦ 하공진河拱辰 - 시조편 참조
   ◦ 하칙충河則忠
시조 증 문하시랑동평장사贈門下侍郞同平章事 공진拱辰공의 아들이다. 문종 6년 1052에 아버지의 공훈으로 5품직을 제수 받고 이어서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에 증직되다.
   ◦ 하탁회河卓回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국자감國子監 사문박사四門博士로 재직 중 어버이의 노환老患으로 관직을 버리고 환향還鄕하였다.
   ◦ 하정재河挺才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낸 탁회(卓回의 아들로 문과文科에 장원급제壯元及第하여 한림원 학사翰林院學士를 역임하다.
   ◦ 하남수河南秀
 사문박사四門博士를 지낸 탁회卓回의 손자이요, 문과에 급제하고 한림원 학사翰林院 學士 를 지낸 정재挺才의 아들이다.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통의대부 검군기감通議大夫檢軍器監을 지냈다.
  ◦ 하소河邵
 검군기감檢軍器監을 지낸 남수南秀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통의대부 군기소윤通議大夫軍器少尹을 지냈다
  ◦ 하호河浩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통의대부 검군기감檢軍器監을 지낸 남수南秀의 손자이고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군기소윤軍器小尹을 지낸 소邵의 아들이다. 문과文科에 급제했다
  ◦ 하부河扶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군기소윤軍器小尹을 지낸 소邵의 아들이다. 문과文科에 급제했다.
  ◦ 하부심河富深
 문과에 급제하여 통의대부通議大夫에 오르고 군기소윤軍器小尹을 지낸 소邵의 아들이다. 충렬왕 때 문과文科 급제及第하였으나 덕德을 숨기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박사공 이하 4대가 문과 급제하고 공公의 3형제도 문과 급제하여 국법에 따라 양친이 전곡田穀을 하사받았다.
   ◦ 하식河湜
  문과文科에 급제한 부심富深의 아들이다. 고려 26대 충선왕조에 선관서승膳官署丞을 지내고 조선조에 증손 륜崙의 공훈功勳으로 순충보조공신 보국숭록대부 판 사평부사純忠補祚功臣輔國崇祿大夫判司評府事로 추증追贈되고 진강군晉康君의 봉호封號를 받았다. 단목 지미시趾美祠에 봉향하다.
  ◦ 하시원河恃源 ? - 1360 恭愍王9년
문과文科에 급제한 부심富深의 손자이며 선관서승膳官署丞을 지내고 증 순충보조공신 보국숭록대부 판사평부사純忠補祚功臣輔國崇錄大夫判司平府事로 추증追贈되고 진강군晉康君의 봉호를 받은 식湜의 아들이다.
 고려조에 식목도감녹사式目都監錄事를 지내고 증 순충적덕병의 보조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우정승 판병조사贈純忠積德秉義補祚功臣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政丞判兵曹事에 추증追贈되고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의 봉호封號를 받았고 시호諡號는 문정文貞이다 묘墓는 진주시 미천면 오방리 오방 후산 계좌癸坐이다. 1977년 12월 30일 경상남도 문화재文化財 기념물紀念物 41호 조선조고분군朝鮮朝古墳群으로 지정되었다
  ◦ 하거원河巨源
 공은 선관서승을 지낸 후 순충보조공신 숭록대부 판사평부사判司評府事에 추증된 휘諱 식湜의 둘째 아드님이며, 식목도감 녹사綠事를 지낸 후 보국숭록대부 의정부우의정 판병조사에 추증된 진강부원군 시諡 문정공 시원恃源의 아우님이다.
 공은 일찍이 관직에 나아갔으나 영명榮名을 생각하지 않고 전객시 령令을 치사致仕한 후 향리鄕里로 돌아와 자손을 교훈하였으니 그 덕화德化가 향당鄕黨에 미쳤다. 이로써 누대累代의 후덕厚德이 축적되어 자손들이 번성하고 현달하여 공은 순충익조공신 자헌대부 병조판서로 증직되었다. 배위는 사온서령을 지낸 진양정씨 정경正卿의 여女이며 6남 2녀를 두었다. 장자長子는 충목왕 즉위년에 장원급제하여 1등 공신에 올라 청천군의 봉호를 받은 을지乙沚이고, 둘째는 비순위 정용낭장을 거쳐 문한직文翰職의 으뜸인 한림원 학사에 오른 을숙乙淑이며, 셋째는 판군기감사를 지낸 후 병조참판에 증직된 을부乙桴이다. 넷째 을순乙洵은 중랑장을 지낸 후 시중侍中에 증직되었고, 다섯째 을빈乙玭은 해령海領 천호千戶였고, 여섯째 을정乙汀은 전구서典廐署승承이었으며, 서자庶子 을생乙生은 산원散員이었다.
 공의 장녀는 목사 박응朴膺에게 시집가 2남 2녀를 두어 중추공 하결河潔(문효공의 아우)을 큰사위로 삼았으며, 공의 차녀는 봉상령 강로姜璐에게 시집가고, 서녀庶女는 강시중에게 시집갔다. 중추공 하결河潔(문효공의 弟氏)이 공의 외손서外孫壻이니 중추공의 후손인 남해현령 하신河紳, 겸재 하홍도河弘度, 신당新塘 하공헌河公獻, 태계 하진河溍 등은 공公의 외외후손外外後孫이다. 
 ◦ 하을지河乙沚 - 역사상 현조편 참조
  ◦ 하을부河乙桴
 공公의 증조는 고려후기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정치가 문란하자 덕을 숨겨 벼슬을 멀리했던 휘 부심富深이며, 조부는 선관서승膳官署丞을 지낸 후 순충보조공신 숭록대부 판사평부사判司評府事에 추증된 휘諱 식湜이다. 부父는 전객시령典客寺令을 치사致仕한 후 순충익조공신 자헌대부 병조판서에 증직된 병판공 휘諱 거원巨源이며, 모母는 사온서령을 지낸 진양인 정정경鄭正卿의 여女이다.
 공은 6형제 중 셋째로 태어났으니 장형長兄은 장원 급제한 청천군 을지乙沚이고 둘째 형님은 학사공 을숙乙淑 이다.
 공은 일찍부터 형님들을 따라 학문을 닦았고 문음으로 관직에 나아가 군기감軍器監을 지낸 후 일찍이 향리에 은거하였으나 훗날 손자 경복의 현달로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배위 정부인 수성 라씨는 검교檢校 예빈시정禮賓寺正을 지낸 경瓊의 따님이시며 5남 1녀를 두었다. 장자는 개곡처사 취유就濡이고, 둘째는 공조전서 취동就東이며 셋째는 상호군을 지낸 후 병조판서에 추증된 승해承海이다. 넷째 승호承浩는 이조정랑을 지냈으며 관찰사 하자청의 아들 하효문이 그의 외손서外孫婿이니 겸재 하홍도는 공의 외외후손外外後孫이다. 다섯째는 호군 열烈이며, 외동 따님은 낭장 김득귀에게 시집가 찰방 상균과 상비 두 아들을 두었다.
 공의 묘는 하동읍 두곡리 문암 동산에 쌍분이며 묘표가 있다.
   ◦ 하윤린河允潾 1321년 충숙王 8 - 1380년 禑王 5
 자字는 소개所開요, 증순충보조공신 숭록대부 판사평부사 진강군晉康君의 봉호를 받고 선관서승을 지낸 식湜이 할아버지이며, 증순충적덕 병의보조공신 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 우의정 판병조사 진강부원군의 봉호를 받고 시호는 문정文貞인 시원恃源의 아들이다. 1346년에 식목도감녹사式目都監錄事가 되고 1352년에 선관서승丞에 제수되었으며, 1356년에 선관서령令을 거쳐 1356년에는 문하부녹사로 자리를 옮기었다. 1358년에는 선덕랑 북부령의 배명을 받았고 1360년에 부친상을 당하여 벼슬에서 물러 나와 상제를 마치고 1363년에는 숙주군사가 되고 1364년恭愍王13에 조봉랑이 되었다.
  숙주 군수로 있을 때 정사를 돌봄에 있어서는 관용을 베풀어 용서하는 것을 근본으로 삼았으며 형벌을 줄이고 백성들을 잘 보살폈다. 1365년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가을에는 문충공 하륜(河崙)이 급제를 하고 다음해에 벼슬길에 오르니 공은 나는 조정에 벼슬을 하는 아들이 있으니 다시는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을 것이라 하고 고향의 벗들과 사귀면서 금강사金剛社 라는 모임을 만들어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1380년에 호정浩亭 선생이 대사성으로 있으면서 재상에게 글을 올려, 지금 순흥부사順興府使는 유학자儒學者이니 저 대신 그 사람을 대사성에 임명하시고, 제 부친을 순흥부사로 임명해 달고 하니, 재상이 그 말을 의롭게 여겨 공에게  순흥부사를 제수하고 품계는 예전대로 봉익대부로 하였다. 공께서 그해 가을에 병이나 9월 24일에 세상을 떠났다. 1398년에 문충공文忠公이 정사공신定社功臣이 됨으로써 공에게 충훈익대신덕수의협찬공신忠勳翊戴愼德守義協贊功臣 특진보국숭록대부特進輔國崇祿大夫 문하우정승門下右政丞 판병조사判兵曹事 진양백晋陽伯을 추증追贈하였고, 1402년에는 의정공이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자,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진양부원군晋陽府院君을 더해주었다.
  ◦ 하윤구河允丘
 식목녹사式目錄事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  시원恃源의 차남이며 윤린의 아우이다. 벼슬은 문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부윤府尹을 지냈다.
   ◦ 하 준河濬
 예종 때 합문지후閤門祗侯를 지냈다. 시조始祖 공의 현손玄孫이다. 사서史書에 예종 5년 임금이 하공진 공의 공훈을 추념하여 현손 내시위위 주부 준을 합문지후로 삼고 절구 한 수를 지어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세계世系가 불명不明하여 진양하씨 보책譜冊에는 등재되어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