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윤공계判尹公系 상대인물上代人物
  글쓴이 : 진양하씨대…     날짜 : 13-08-05 13:17     조회 : 612    
판윤공계判尹公系 상대인물上代人物
  ◦ 하유河游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  시원恃源의 손자이며 통정대부 부윤府尹을 지낸 윤구允丘의 아들이다. 공公은 문과에 급제하여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오르고  검교한성판윤檢校漢城判尹을 지냈다.
  ◦ 하지혼河之混
 통정대부通政大夫로 부윤府尹을 지낸 윤구允丘의 손자이며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유游의 아들이다. 공公은 가선대부 한성소윤嘉善大夫漢城少尹을 지냈다.
  ◦ 하지명河之溟 
문과에 급제하여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오르고  부윤府尹을 지낸 윤구允丘의 손자이며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유游의 아들이다. 공公은 1423년에 進士가 되고 초계 군수草溪郡守를 지냈다.
  ◦ 하현河現
자字는 명지明之요, 가선대부 한성판윤嘉善大夫漢城判尹 유游의 손자이며 초계 군수草溪郡守를 지낸 지명之溟의 아들이다.
1453년에 진사進士시에 합격하고  사온서 직장司醞暑直長을 지냈다.
  ◦ 하응천河應千
자字는 우성遇聖이요, 초계草溪 군수郡守를 지낸 지명之溟의 손자이고 직장直長을 지낸 현現의 아들이다. 공公은 1471년에 진사進士시에 합격하고 의흥위義興衛 좌부장左部將을 지내다.
  ◦ 하형河瀅  
초계 군수郡守를 지낸 지명之溟의 증손이고 직장을 지낸 현現의 손자이며 의흥위 좌부장左部長을 지낸 응천應千의 아들이다. 1474년 진사進士시에 합격하고 황간黃澗 현감縣監을 지냈다. 재임 기간에 민정을 잘 다스린 공으로 백성들이 선정善政을 사모思慕하는 거사비去思碑를 세웠다.
  ◦ 하희서河希瑞 1501 燕山7 - 1570 선조3
자字는 구노龜老이요, 초계군수를 지낸 지명之溟의 현손이며 황간 현감縣監을 지낸 형瑩의 아들이다. 성품이 엄정하고 충담하여 사물에 다툼이 없고 오직 선인을 이어받아 후인을 넉넉케 하는 것으로 평생의 계책을 삼았다. 중종20년1525에 생원生員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을 접고 초야에 살면서 후진양성에 힘썼다. 남명 조식 선생과 도의로 교우交友 하였고 공公의 몰沒에 남명 선생이 만시挽詩 4수를 지어 곡哭하였다.
  ◦ 하인서河麟瑞
호號는 풍월헌風月軒이요, 황간 현감黃澗縣監을 지낸 형瑩의 아들이다. 남명 조식南冥曺植선생과 친분이 두터워 학문을 토론하기도 하였다. 장자長子 환성재 낙洛과 차자次子 각재 항沆 두 아들을 남명南冥에게 보내 스승으로 받들게 하였고, 자식을 가르침에 매우 근면하고 반드시 성취를 기약했기에 두 아들은 당세에 이름을 떨쳤다. 1534년에 생원生員 진사進士 양시에 합격하였으니 학문의 뛰어남을 알 수 있고 남명南冥과 우의를 맺고 갈고 닦았으니, 그 교의交義를 알 수 있다. 공公은 산해山海와 연마硏磨하고 환성喚醒 각재覺齋를 길렀으니 자취는 없어도 그 덕은 알 수 있고 풍월風月은 맑고 밝아 흠이 없으니 후인으로 하여금 앙모仰慕하게 하였다.
  ◦ 하면河沔 1537 中宗32 - 1580 宣祖13
字는 혼원混源이요, 생원 희서希瑞의 아들이다. 어려서부터 성품性稟이 온화溫和하고 재기才氣가 남달랐으며 학문이 조성早成하였고 시문에 능하여 사우士友의 추중推重을 받았다. 호조정랑戶曺正郞을 지냈으며, 진주목사 박승임이 세운 진주 4재중 서재西齋-覺峯齋의 초대 재상으로 어린자제들의 교육에 전념하였다.
. 아들은 수일受一 천일天一 성일(경휘鏡輝)이다. 세 아들이 모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수일受一은 문과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