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곡마을
 
사곡마을
 
소재지: 진주시 수곡면 사곡리 사곡
 
진주에서 서쪽으로 약 24㎞를 가면 수곡면이 있는데, 면사무소 네거리에서 북쪽으로 2㎞를 가면 사곡마을이 있다.
마을의 산세는 지리산 천왕봉의 줄기가 뻗어 내려와 마지막으로 맴돌아 멈춘 곳이 이곳으로 아늑한 품이 예로부터 거유(巨儒) 명현(明賢)이 태어날 고을로 지목되어 왔다. 이 마을이 100여 호는 거의 모두가 하씨 성으로 진양 하문의 집성촌이다. 마을 곳곳에 서있는 재실과 정각 서원과 정려 그리고 500년 수령의 와송과 느티나무 등이 일견하여 유서 깊은 선비의 고을임을 알게 해 준다. 고려시대에는 이하리(籬下里)라고 불렸는데 울타리 밑은 곧 피란처로서 은일지사의 고을이라는 뜻이 아닐까 추정된다. 그 뒤 마을 뒷산의 모양이 살쾡이를 닮았고 실제로 삵이 많이 살고 있다하여 삵실이라고 불려오고 있다가 근래에는 뒷산에 삵이 살지않아 잊혀져가는 읾이므로 항간의 마을 이름으로는 싹실로 불려지고 있다. 싹실은 영원불멸로 연년히 이러지는 새생명의 태동 즉 새싹의 산실(産實)이라는 으미로 통용되는 것이다. 현재의 행정 구역 명칭 사곡士谷은 고려 말 진주 선비 우곡 정온隅谷鄭溫공이 이 마을을 둘려보고 서당과 집집마다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하여 그의 문집 월아산 기(月牙山記)에 사기만곡 탁피소회지맥(士氣滿谷卓彼昭回之脈)이라 읊은 데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처음 터를 잡았던 곳은 정곡井谷孝子里孝子 이었으나 후대에 송정 하수일河受一공 증손 석계 하세희(河世熙 )공께서 이곳으로 이거한 후 문행과 부력을 겸비한 반촌으로 200호이상의 번성하여 씨족이 진양하문의 전통을 이어오는 큰 마을이었다. 풍속이 온후하고 예와 덕행이 중시하는 마을 분위기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