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필제 처봉사위 전계문서
長子 必濟 處奉祀位 傳繼文書
1732(英祖8), 紙本黙書,41×217㎝,慶尙南道 有形文化財 第409號
하응운이 장자 필제에게 선대 봉사에 따른 위토를 전계하는 문서. 하응운은 창주에서 자신에 이르는 5대 동안에 노정된 가계계승의 난맥상과 위선사업의 어려움을 피력하며 위토 관리와 선대 봉사에 만전을 기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묘제의 윤회봉사를 지양하고, 종가 보존과 종통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에서 17세기 이후 확고하게 뿌리를 내린 주자학적 종법(宗法) 질서가 창주가에도 크게 영향을 주었음을 알 수 있다. 하필제1695-1742의 자는 군흘君屹, 초명은 중지中砥. 뒤에 재악載岳으로 다시 개명했다.
임자년 2월 20일에 큰아들 필제에게 여러 대의 제사조와 새로이 늘어난 제사조를 모두 적어서 주는 문서이다. 위 문서는 아! 옛적에 나의 5대조 國賓께서 무후하여 고조憕를 조카로서 계후하셨고 또 다시 고조께서 무후하시자 증조達道께서 역시 조카로서 고조부를 계후하셨다. 조부께서는 형제河洛. 河泓를 두셨으나 아버지께서潤宇 형제가 없어 여러 대 동안 혈혈단신이 되었으니 어찌 차마 말할 수 있겠는가? 나應運에 이르러서는 비록 너희 형제를 두었으나 너의 아우가 병이 있다. 그러니 선대의 제사를 받들고 가업을 지키는 책무가 어떠하겠느냐? 나 또한 못나서 선대에서 물려받은 약간의 유업을 도산하는 지경에 빠지고 말았으니 어찌 후손들의 본보기가 되고 경계할 것이 되지않겠는가? 양동陽洞 앞에 위치한 본당本堂과 그에 소속된 대발리大鉢里 등에 위치한 논은 모두 제사 위토인데도 팔아버렸으니 마음이 후회스럽고도 두려워서 몸둘 바를 모르겠구나. 오직 너 필제가 반드시 힘을 다해 노력해서 그 빠진 수를 보충할 것이다. 그리고 차현車峴의 안팎에 위치한 산소의 비석을 세우고 재실을 건립하는 등의 일은 모두 내가 선조의 훈계를 받들어 경영했는데도 지금까지 모두 이루지 못해 마음의 두려움이 아프니 언제 계절을 고치고 그치겠는가?
천성산泉星山의 산소는 여러 대 동안 천장遷葬 이후로부터 그 묘소 아래에 재실을 짓고 제위전과 제기를 갖추어 두었다. 절사에 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에 자손들로 하여금 돌아가며 행하지 말 것이며, 종손자로 하여금 주관하게 하는것이니 이것이 나의 뜻이다. 천성산의 서쪽의 한 혈맥을 비우는 것은 대개 성태산省台山에 있는 산소를 옮겨 올 뜻이 있었으나 감히 실행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능히 나의 뜻을 이을 자가 있을 것인가.
상계의 제사조는 이미 전에 적어 두었으나 지금 다시 위토 별로 다시 적어둔다. 우리
부부가 죽은 후 제사를 위한 새로운 위토는 보태어 써 준다. 후세에 만일 못난 자손
이 생계를 도모하지 못하거나 또 변을 당하여 이들 전답과 노비에 훼손을 가하는 자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손된 자들이 모두 일어나서 논쟁하여 이들 전답이 흩어지지 않게 하라. 종가의 터는 종손이 대대로 지켜서 비록 잠시 이사하는 폐단이 있다하더라도 남에게 절대로 넘기지 말아라. 노비는 그 소생이 혹은 있기도 하고 간혹 죽기도 하였으나 모두가 제위조로 관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몫을 나눔에 있어 언급하지 않기로 하였다.
종자와 종손들은 나의 뜻을 체득하여 대대로 보존하고 지켜서 바꾸거나 어긋나지 않게 하라. 내가 이사해 오고 분묘를 이장한 후에 병이 깊어지고 근심이 많아 한해도 편안할 날이 없다. 그러나 화복은 자기로부터 구해야 하는 것이니 오직 이로써 삼가고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아야 할 것이다. 이로서 지관의 허망하고 허탄한 이야기에 동요되지 말아서 산소와 종가 집터를 망녕되이 옮기지 않는다면 매우 다행일 것이다. 내가 선조를 받들고 가업을 닦는 것에 대해 부끄러운 것이 많으니 능히 공경하고 더욱 경계해서 너의 아비처럼 되지 말아라. 그래서 일부의 가례로서 선대의 제사를 받들고, 일부의 소학으로 집을 정제하면 내가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다른 말을 더 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