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맹보 정려기旌閭記
선생은 진주의 드러난 성씨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성현의 글에 잠심潛心하였고, 집안에서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돈독했다. 부친께서 병이 나자 약을 다리며 대변을 맛보았다. 울면서 하늘에 빌어서 병이 이내 나았다. 상을 당하여 슬퍼하고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예에 지나쳤으며, 이미 장사를 하고는 여묘 3년에 수질과 요질을 벗지 않았고 조석으로 곡함을 풍우에도 건너뛰지 않았다. 집안이 가난하여 일찍이 제육이 떨어짐을 근심하자 노루가 스스로 찾아와 이를 잡아 제수로 썼으니 사람들이 효성에 감응한 소치라 하였다.
부모상에 전후 6년 동안 시종 미음을 먹고 한결같이 슬퍼했으니 형제와 뭇 종형제들이 모두 본보기로 삼았다. 상을 마치고는 아침저녁으로 사당에 배알하고 출입에 반드시 아뢰면서 한결같이 예법을 따랐으니 비록 옛날의 지효라 해도 이에 더할 것이 없었다. 임진란이 일어나자 사람들이 모두 달아나 숨었으나 선생은 곧 조용히 가묘에 들어가 신주를 모시고 제기를 감추었으니 모두 법도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하늘이 연수를 더하지 않아 63세에 세상을 떠나니 원근의 사대부들이 애통하고 탄식하지 않음이 없었다. 여러 의론이 모아지자 누차 실적을 갖춰 본 군에 알리고 방백에게 전달하여 조정에 장계를 올려 정려를 청함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오래도록 표창이 없었다. 금상 즉위 8년에 향의가 여전하고 군의 보고가 예전 같아 방백이 예부에 보고하니 이에 윤허하여 드디어 정려가 섰다. 만력43년 7월 일 정려 함
철성인 이성길 찬
旌閭記
先生晉陽甲姓也自小力學潛心聖賢之書居家色養備至且篤友愛父在沈痂湯藥嘗糞號泣禱天天父病乃愈及遭喪哀毁過禮旣葬盧墓三年不脫絰帶朝夕哭墓不廢風雨家貧嘗憂祭肉乏絶山障自來獲而用祭人以爲孝感父母兩喪前後六年終始啜粥一向柴毁兄弟群從皆爲取則復常朝暮謁廟出告返面一遵禮法雖吉之至孝無以加矣至於壬辰倭難人皆奔竄先生則臨亂從容入家廟奉神主藏祭器無不中節矣天不假年六三面逝遠近大小士夫無不通惜敬暯僉議洽同屢具實跡報于本郡轉達方伯啓聞朝廷請非一久未完표褒今上卽位八年鄕議如前郡報遵舊方伯轉聞禮部啓允遂旌其閭
萬曆四三年七月日旌閭郡守鐵城李成吉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