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이씨 일신삼행 정려기旌閭記
학생 하응림河應霖의 아내 재령 이씨의 정려이다. 이씨는 선비 台老의 여식으로 부제학 맹현의 10세손이다. 1716년 숙종 병신에 태어나 18세에 선비 하응림에게 시집가서 27세에 홀로 되었다. 남편 병이 위독하자 날마다 목욕하고 하늘에 자신이 대신하기를 빌었다. 손가락에 피를 내어 남편에게 먹이면서 말하기를 “그대가 진실로 불행해진다면 저도 마땅히 따르겠습니다”라고 했다. 남편이 죽자 곡읍哭泣 하면서 한시도 빈소를 떠나지 않았다. 혈서를 광속에 넣어 남편을 따라 죽겠다는 맹서를 밝혔다.
이씨가 생각하기를, 남편은 죽고 자식은 없고 시아버지는 늙어 의리상 당장 죽을 수 없다 라고 하고 시아버지를 지극한 효로써 섬기고 봉양하고 제사 지내는 것을 정성과 예로써 다하였다. 조카를 양자로 삼아 가르치기를 엄부같이 하여 집안이 이미 완성되자 하루는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1784년 10월 14일이었으며 남편이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수의와 이불을 갖추어 상자에 넣어두고 유서에 이르기를 “지금 이후 죽음을 기다릴 것이다. 죽는 것은 남편을 따르는 것이다” 라고 했다. 이로부터 이씨는 43년 동안 뜻을 바꾸지 않았다. 대개 강개하여 스스로 죽는 사람에 비교하면 어찌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이씨는 스스로 미망인이라고 하면서 종신토록 고기를 먹지 않았다. 금상 정미년에 관찰사가 장계를 올렸고 이씨의 아들 학호가 또 상소를 올렸다. 임금이 이르기를 “시아버지에게 효도하고 남편에게 열녀가 되고 자식에게 의로운 부모가 되었도다. 한 몸으로 세가지 행실을 하였으니 일찍이 듣기 어려운 일이다.”라고 하면서 정려를 명하였다.
旌閭記
烈女學生 河應霖妻 孺人載寧 李氏 閭
李氏◦ 載寧人◦ 士人台老女◦ 副提學孟賢十世孫◦ 生肅宗丙申◦ 年十八◦ 歸士人河應霖◦ 二十七而寡◦ 夫病篤◦ 日沐浴禱天◦ 乞以身代◦ 出指血以進◦ 語夫曰◦ 夫子苟不幸◦ 會當殉地下◦ 夫死哭泣◦ 坐臥不離殯◦ 血書納之擴◦ 申前誓◦ 李氏念夫死無子舅老◦ 義不敢卽死◦ 事舅至孝◦ 養送盡誠禮◦ 取族子爲子◦ 敎褖如嚴父◦ 家旣成◦ 一日仰藥而死◦ 實甲辰十月十四日◦ 夫死日也◦ 治極誨衣衾在苟◦ 遺書曰◦ 今而後死有待也◦ 所以死◦ 從夫子也◦ 李氏積四十三年◦ 不易志◦ 卒以殉所事◦ 視慷慨殺身者◦ 詎不尤難矣哉◦ 李氏自爲未亡人◦ 終身食不肉◦ 今上戊申◦ 道臣以狀聞◦ 李氏子學浩上言◦ 聖敎曰◦ 孝於舅◦ 烈於夫◦ 義於子◦ 一身三行◦ 會所罕聞◦ 命旌閭
庚戌仲春通政大夫前吏曹參議 錦城 丁範祖 謹述
原任 漢城判尹 晉山 姜世晃 謹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