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양재기景陽齋記
경양재기景陽齋記
 
함양읍 북쪽 오리쯤에 이름난 마을이 있으니 우동愚洞으로 곧 우리 하河씨의 세장世庄이다. 나의 십삼대조 공조참의 양암부군陽菴府君께서 진양의 단동丹洞으로부터 이곳에 터를 잡아 산 지 오백년이 넘었다. 부군은 천자天資가 순후하고 품행이 독실하였으며 음애陰厓 이 선생의 문인이다. 토계강당兎溪講堂에서 애옹을 배알하고 소학, 근사록, 상례喪禮 등 서책을 받았다.
 이후로 벼슬에 뜻을 버리고 냇가 바위 위에 수간의 정사를 짓고 즐거이 노닐면서 스스로 호를 휴절거사休絶居士라 하니 대개 세상 인간사를 피하여 杜門두문 한다는 뜻이다. 일찍이 송규암宋圭庵 선생을 사천 적소에서 뵈온 인연으로 이구암李龜岩 선생을 만나서 학문의 요결을 서로 강론하였더니 이옹이 경복하였다. 부군께서 천분이 심고하고 학문에 정성을 다하였으니 어버이 섬김에 효를 다하고 형에게 그 공경을 다하고 향사에 정성을 다하고 의리에 엄하고 가사에 정정한 규모가 있었고 사람을 대하는 데 이르기까지 가득하였다.
 아들이 사남四男이었으니 우계愚溪 선생 맹보孟寶는 효우와 학행으로 효자 정려를 받고 몽효정 구천서원에 배향되고, 중보仲寶는 참판으로 호는 죽재竹齋이고 세보世寶는 임진란 때 행방불명되어 후사가 없고, 계보季寶는 참판이다. 세분 아드님의 자손이 번성하여 널리  퍼졌으니 덕업과 문장, 충효와 의열이 대대로 끊이지 않음을 세상이 아는 바요, 마을 앞에 엄숙히 늘어선 삼 효자 정문은 사람마다 우러러보며 지금 역시 사회에 이름을 날리는 자가 많으니 이 모두가 어찌 부군께서 덕을 심은 여복이 아니라 하겠는가? 지난 병인년 춘정에 여러 유지들이 잊지 않고 흠모하여 재실을 지어 제사코자 문중에 의론하니 여러 문중이 즐거워 하니라. 드디어 성금을 내어 마을 가운데의 양지쪽에 터를 잡아 열심히 오가육영五架六楹의 기와집을 지었으니 그 규모의 화려하고 화려치 못함은 논할 것이 없고 또한 면면히 이어오는 효심이 아니면 어찌 이 일이 이루어졌겠는가? 진실로 우리 문중의 경사로다. 매년 양력 오월 오일을 제일로 정하여 헌작하니 세일제의 예를 따름이요, 우계, 죽재 참판 공을 배향하여 이 재실에서 제사지내고 재숙齋宿하면서 부군의 은덕을 길이 사모하고 화수의 정의를 밝혀서 가슴깊이 새기고 체득하여 나날이 행한다면 거의 후손된 도리를 다한다 하겠으니, 어찌 선조의 뜻과 사업이 진작되지 않을까 걱정 하리오? 제족은 더욱 힘쓸지어다. 문중이 그릇되게 나에게 기문을 지어라 부탁하거늘, 오호라 이를 회고하건대 분말 같은 작은 후손 불초 주현周鉉이 생면하고 또한 글도 모르면서 그 어찌 부군의 덕행을 만의 하나인들 헤아려 본뜨리오? 굳게 사양하였으나 부득하여 머뭇거리다가 그 참담하고 외람됨을 잊어버리고 정성 들여 족보나 가승 및 선현先賢들의 서술한 문자 중에서 주워 모아 글을 이루어 문중의 명령에 보답하노라. 현판을 경양재라 걸었음은 부군을 그리워하는 거동이요, 문명세광은 세세 유관한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기문을 지었노라.
  재성 후 십오년 민국 경진(2000년) 입춘 절에 십 삼세 손 하주현 삼가 씀
景陽齋記
咸陽邑北五里許有名村曰愚洞卽吾河世庄也十三代祖考工曺參議陽菴府君自晉陽之丹洞奠居于此준踰五百年府君天資醇厚踐履篤實陰厓李先生之門人也是省覲先公于安州任所歸路謁厓翁于忠州之兎溪講堂受小學近思錄喪禮等書自是絶意仕宦築數問精舍于溪岩之間徜徉自娭自號曰休絶居士蓋以浮仿乎世而僻絶乎人之意也嘗謁圭菴宋先生於泗川謫所遇李龜岩相論爲學之要龜岩敬服府君天分甚高學文有素事親極其孝處兄盖其恭誠於享祀嚴於分義家事整整有規以至接人處事各得其宜有子四男愚溪先生孟寶以孝友學行蒙孝旌享龜川書院仲寶參判號竹齋世寶無嗣季寶亦參判也三公之後子姓繁盛蔓延於四方以德業文章忠孝義烈繼世不絶世所知村之前嚴然列立三孝子之旌門人皆仰之當今亦楊名於社會者數多此皆豈非府君種德之遺蔭也歟往在丙寅春正有志諸公欽慕不己議欲達齋致祭而渾門樂從遂各出自誠卜基於村中向陽處不日成之築五架六楹于瓦屋其規模之華不華無足論之而亦非孝思之綿綿則烏能成此事所眞是吾門之盛事也每以陽五月五日獻爵從歲一祭之禮也配愚溪竹齋參判公饗於是乎齋宿於斯齋永慕府君之德講明花樹之誼體乎心而行乎日用則殆盖繼述之道何患乎不振耶諸族勉之哉門中謬屬余爲記鳴呼府君之証李朝中宗三年戊辰則距今民國庚辰五百六六年顧此眇末後孫不肖周鉉生晩又以不文其何能模擬府君德行之萬一固辭而終不獲遂志其潛猥謹就譜乘及先賢敍述文字中掇拾成文以報門命楬其楣景陽慕府君之儀門名世光者世世流光之意也如是爲記
                         齋成後十五年民國庚辰立秋節 十三世孫周鉉謹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