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水堂公 河潤 墓碑銘
공公의 휘諱는 윤潤이요 자字는 수부晬夫이며 성姓은 하씨河氏이니, 진주인晉州人이다. 증조曾祖 안린安麟은 벼슬했으나 드러나지 않았고, 조祖 순淳은 산음山陰 현감縣監이요, 고考 계지繼支는 거제巨濟 현령縣令이다. 현령縣令이 지원사知院事 박윤창朴允昌의 딸에게 장가들어 공公을 낳았다. 공公은 어려서부터 탁월卓越하고 방정方正하며 엄격嚴格하여 기개氣槪와 도량度量이 있었으며, 장성長成해서는 오로지 전념專念하여 수학受學했다.
정미 1477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合格하고, 계묘 1483년에 문과文科에 등제登第하여 예문관藝文館 검열檢閱 겸兼 대사원帶史院에 보임補任되었으며, 이어 봉교奉敎에 전임轉任되었다가 예조禮曹 호조戶曹 형조刑曹의 좌랑佐郞을 역임歷任하고 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으로 승차陞差하였다. 강직剛直하여 시세時勢에 아첨阿諂 할 줄 몰랐으므로 외직外職으로 나가 순천順川 군수郡守가 되었다. 경신 1500년 2월에 질환疾患으로 군재郡齋에서 별세別世하셨으니 향년享年이 49세歲이며, 12월에 진주晉州 행우산行牛山으로 반장返葬하였다.
공公은 판서判書 김지경金之慶의 딸에게 장가들어 5남男 1녀女를 낳았으니, 장남長男 취굉就浤과 차남次男 취양就洋은 다 진사進士이고, 그 다음 취홍就洪, 취심就深, 취연就演은 모두 수학修學 중中이며, 딸은 겸사복兼司僕 정보鄭寶에게 출가出嫁했다. 오호嗚呼라, 공公은 재행才行이 있어 원대遠大한 기대期待를 받았더니 하늘이 수壽를 주지 않고 벼슬 또한 미흡未洽하구나! 슬프다, 명銘하여 이르노니,
아! 하河公은 현달顯達해야 했거늘, 온축蘊蓄함은 많았으나 시용施用함은 미미微微했네. 저 하늘의 소임所任 그 누가 주관主管하랴? 오직 명수命數가 다하여 이에서 그쳤구나!
墓碑文
有明朝鮮國朝散大夫順川郡守晉陽河公諱潤之墓
公諱潤字晬夫姓河晉州人曾祖安麟仕不顯祖淳山陰縣監考繼支巨濟縣令縣令娶知院事朴允昌女生公公幼卓犖方嚴有氣度旣長折節受學中丁酉司馬登癸卯文科選補藝文檢閱兼帶史院轉至奉敎歷禮戶刑三曹佐郞陞司憲府持平以剛直不能媚於時出爲順川郡守庚申二月以疾卒于郡年四十九越十有二月返葬晉之行牛山公娶判書金之慶之女生五男一女長就浤次就洋皆進士次就洪就深就演俱志學女適兼司僕鄭寶嗚呼以公之有才行負遠大之望而天不畀以壽位且不滿哀哉銘曰嗟河公宜爾顯畜之富施之淺彼眞宰誰其尸維有命止於斯
奉正大夫成均館司藝兼經筵承文院校勘鄭光弼謹誌
皇明弘治十五年壬戌三月日立石 弘治後七辛亥改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