陽庵公 河活 墓碣銘
陽庵公 河活 墓碣銘
 자字는 사원士源이요, 중종 무진中宗戊辰 1508년 생生하여 선조 경진宣祖庚辰 1580 윤閏 4월에 돌아가셨으며, 이조 중종李朝中宗때의 명현名賢으로 음애 이자陰崖李耔선생을 섬겼다. 일찍이 풍암楓巖에 집을 지어 휴절거사休絶居士라 스스로 호號를 지으셨고, 뒤에 함양 우동咸陽愚洞으로 이사移徙하여 사시면서 또 양암陽庵이라 자호自號 하였으니, 함양군지咸陽郡誌 인물편人物篇에 상세히 실려 있다. 병인丙寅 1586년에 공公을 위하여 경양재景陽齋를 짓고 매년每年 양력陽歷 5월 5일에 향사享祀하고 있다. 숙부인淑夫人에 추증追贈되신 배위配位께서는 무안박씨務安朴氏로 현감縣監 평坪의 여女이고 이조판서吏曹判書 임묘臨卯 손녀孫女로 매죽헌 성삼문梅竹軒成三問의 외손녀外孫女이시다. 참의공參議公께서는 고려조高麗朝의 충절 명현忠節名賢으로 상서공부시랑尙書工部侍郞에 제수되고 증문하시랑동평장사贈門下侍郞同平章事인 시조 하공진공始祖河拱辰公의 십육세손十六世孫이며 부군父君은 통훈대부 안주목사通訓大夫安州牧使 우치禹治이고 자子는 맹보孟寶 중보仲寶 세보世寶 계보季寶로 사보四寶 형제兄弟로서 후세後世에까지 오래도록 그 아름다운 이름을 떨치고 있다.
         참의공파 죽재공파 우계공파參判公派.竹齋公派.愚溪公派 後孫 一同 삼가 세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