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윤(河潤)
1488년 (成宗19年) 戊申 12月 11日 庚子
예문관 봉교 하윤 등이, 임사홍을 서용함이 부당함을 아뢰는 상소문
예문관 봉교 하윤(河潤) 등이 상소하여 아뢰기를, “신(臣)들이 삼가 본관(本館)의 일기를 살펴보니, 무술년 1478년에 임사홍이 붕당을 지어 조정을 혼탁하게 어지럽히자, 전하께서 여럿 사람의 의논을 널리 채택하여 밝게 단죄하시고, 먼 곳에 귀양 보내 다시 쓰지 않을 뜻을 보이셨습니다. 이것은 순임금께서 사흉(四凶)을 치죄하고, 공자께서 소정묘를 주살한 것과 더불어 마땅히 빛을 드리우고 본보기가 되어 만세에 전할 만한 일입니다.
신(臣)들이 잠깐 이르건대, 순임금과 공자께서는 천하의 대성인이신데, 사흉과 소정묘 같은 무리가 어찌 선치(盛治)에 만에 하나라도 해롭게 했겠습니까마는, 사악함을 제거함에 의심하지 않고 이처럼 심하게 한 것은, 성인께서 작은 것을 막고 조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이상(履霜)과 금니(金柅)와 같은 깊은 경계(警戒)입니다. 그런데, 전하께서는 어찌 홀로 임사홍에게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내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오게 하시고, 또 얼마 안 되어 직첩을 내려주십니다. 대간과 시종의 논박이 그치지 않자, 전하께서는 비록 직첩은 주었지만 끝내 쓰지 않겠다고 하교하셨습니다. 전하의 전교가 아직도 신(臣)들의 귀에 남아있고 사책(史策)에 쓰여 무궁토록 전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아비 ‘원준이 작은 공을 세웠다 하여 임사홍같이 흉악하고 간사한 자에게까지 어서(御書)로 녹용(錄用)하셨으니, 이는 무슨 뜻입니까? 임사홍이 교만하여 주상을 업신여기고 음흉하게 남을 해치는 정상(情狀)은 전하께서 통촉하시는 바이며, 대간과 홍문관에서 자세히 아뢰었으니, (臣)들은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신(臣)들이 지위에서 벗어나 일을 거론하는 것이 잘못인 줄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지만, 감히 말씀드리는 것은, 전하께서 20년 동안 정신을 가다듬어 다스려서, 인품이 높고 흠 하나 없는 덕망인데, 임사홍의 이 한 일로 오점을 남겨 전후의 사책(史策)과 크게 어긋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전하의 이 일은 어찌 만대에 전신(傳信)할 수 있겠습니까? 임사홍이 전하를 저버린 것이 심한데, 전하는 여럿 사람의 의견을 물리치고 임사홍을 돌봐줌이 이와 같으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신들이 그윽이 생각건대, 소인이 환로(宦路)에 진퇴하는 것은 나라의 안위가 달려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쾌히 결단하시어 머뭇거리지 말고 빨리 명하신 것을 거두소서.” 라고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하였다.
上疏
○藝文館奉敎河潤等上疏曰
臣等謹按本館日記歲在戊戌任士洪交結朋黨濁亂朝廷 殿下博採群議明以斷之投諸遐荒示不復用此則與大舜之罪四凶孔子之誅少正卯當垂輝竝觀而可傳於萬世者也臣等竊謂舜與孔子天下之大聖也如四凶少正卯之類豈能害盛治之萬一乎然去邪勿疑如此之甚者聖人防微杜漸履霜金柅之深戒也 殿下於士
洪何獨不然竄之未幾而賜環又未幾而賜職帖臺諫侍從論駁不已則 殿下敎曰雖賜職帖終不復用 殿下之敎猶在臣等耳書諸史策可傳信於無窮矣今者以其父元濬之微勞細功而延及於士洪之凶邪 御書錄用是何意耶士洪之驕蹇慢上陰賊害物之情狀 殿下之所洞照而臺諫弘文館詳陳之臣等不須更敷然臣等非不知出位論事之爲非而敢言之者臣等竊惜 殿下二十年勵精圖治圭璧無瑕之德點汚於士洪一事而前後史策大相牴牾也 殿下此擧豈可傳信於萬世乎士洪之辜負 殿下甚矣 殿下排群議眷顧士洪若是何哉臣等竊念小人進退繫於宗社安危伏願夬決無留亟收 成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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