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천군 하을지
청천군 하을지
 1). 덕흥군과 최유의 침입 때 도원수부都元帥府 진무鎭撫 로 봉주鳳州에 주둔하다.
 공민왕의 친명반원정책親明反元政策에 반발하던 원나라에서 공민왕 12년 공민왕을 폐하고 원나라에 머물던 덕흥군 혜(충선왕의 서자)를 고려의 새로운 왕으로 삼기 위해 요양의 군사 1만 명을 징발하여 최유崔濡 등으로 하여금 덕흥군을 호송하게 하였다는 소문이 고려 조정에 전해지니, 공민왕은 재추宰樞들과 방어책을 의논한 후 경천흥을 서북면 도원수로 삼고 여려 장수들과 함께 동북지방을 방어하게 하였다. 12월에 덕흥군이 요동에 진을 치고 척후하는 기병이 압록강에 이르자 조야朝野가 진동하여 두려워하면서도 변방의 장수가 변란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군사 쓰는 방략을 중앙에서 지시하였기에 장수들이 조심하여 스스로 전제專制하지 못하였다. 조정에서 의주에 있는 도지휘사都指揮使 안우경과 여려 장수에게 압록강을 건너가서 덕흥군을 맞아 치게 하였기에 인주麟州에 있던 도순찰사都巡察使 이귀수가 봉주鳳州에 이르니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이귀수의 군졸들이 전투에 나가는 것을 꺼려 반란을 꾀하다가 복주伏誅되었다. 이때 서북면도순문사겸평양윤 이인임이 도원수부 진무鎭撫 하을지에게 말하기를, “우리 군사가 굶주리고 추워서 돌아가기만을 생각하니 어찌 딴 마음이 없겠소. 압록강을 건너는 계획은 참으로 한심하다 하겠소. 그런데 원수는 우유부단하니 내가 다른 일을 핑계하여 원수에게 청해서 그대를 보내 왕에게 현지 사정을 품달稟達하도록 하겠으니 그대가 잘 처리하시오” 하고 곧 ‘이귀수의 군졸이 반란을 일으킨 사실을 기록한 글’을 하을지에게 주었다. 하을지가 밤낮으로 길을 달려 왕을 알현하니, 왕이 서신을 보고 크게 놀라 미쳐 회답하는 글을 지을 겨를이 없어서 “속히 강 건너는 일을 중지하라”는 유시를 구두口頭로 도원수 경천흥에게 전하게 하였다. 하을지가 급히 변경으로 돌아가 경천흥에게 왕의 뜻을 전달하니 경천흥이 기쁘하며 곧 여려 장수들을 본영本營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다음해 정월 최유가 군대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오니 여려 군대가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여 최유가 선주宣州에 입성하였다. 조정에서 최영崔瑩을 도순위사都巡慰使로 삼아 급히 안주로 가서 군사를 지휘하게 하고, 동북면의 이성계에게 정예 기병 1천명을 거느리고 서북면의 군대와 합류하게 하였다. 최영이 군중에 이르러 엄한 군율로 도망병을 참수하니 군령이 숙정肅正되었고, 이성계와 이순 등 여려 장수들이 와서 합류하니 군세가 강해져 최유의 군대를 토벌할 수 있었다.
 2). 황산대첩荒山大捷
 
1380(우왕6)년 8월에 왜구가 진포鎭浦(금강 어귀)에 500여 척의 함선艦船으로 침입하여 충청·전라·경상의 3도 연해 주군州郡을 마구 약탈 살육하여 그 참상이 극도에 달하게 되었다. 이때 조정에서는 원수 나세羅世와 최무선崔茂宣을 보내 화통火筒과 화포火砲로써 왜선을 격파하여 전부 불태웠다. 그러나 이때 목숨을 구한 왜적들이 옥주沃州(옥천)로 달아나 먼저 상륙한 적들과 합류하였는데, 선박이 소실당하고 퇴로를 잃게 되자 독기를 품고 상주·영동 등지로 진출하여 약탈을 자행하였으니 왜구의 피해가 이처럼 극심한 적이 없었다. 이때 상주 방면으로 진출한 왜구의 주력부대는 다시 경산京山(성주)을 침략하고 사근내역沙斤乃驛(함양)에 집결하여 반격해 오니 왜구를 추격하던 3도의 9원수(배극렴, 하을지, 김용휘, 지용기, 오 언, 정 지, 박수경, 배 언, 도 흥)가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박수경과 배 언을 포함하여 500여명의 군사가 전사하면서 냇물이 피로 물들어 이곳을 피내血溪라고들 하였다. 왜구가 운봉현을 불지르고 인월역引月驛에 주둔하여 북상北上한다는 소문이 조정을 놀라게 하자, 조정에서는 지리산과 해주 방면에서 왜구를 토벌하여 용맹을 떨친 이성계를 삼도도순찰사三道都巡察使에 임명하여 대토벌 작전에 나서게 하였다. 이성계가 남원에 이르자 배극렴과 하을지 등이 이성계를 맞이하니 기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여려 장수들이 부서를 정하고는 다음날 새벽에 동쪽으로 운봉을 넘어 적과 30리 떨어진 황산 서북의 정산봉鼎山峰에 이르러 이성계가 군사를 지휘하여 공격하니 험지에 자리 잡고 버티던 적들이 죽을힘을 다해 돌진해 왔다. 16세 정도의 적장 아기발도阿只拔都가 백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내달리니 우리 군사들이 다투어 피했는데 이성계가 활을 쏘아 그의 투구를 떨어뜨리니 이지란이 쏘아서 죽였다. 이로서 적의 예기가 꺾이게 되어 적의 정예부대가 전멸하니 적들의 통곡소리가 1만 마리의 소 울음소리와 같았다.
 3), 청천군 관련 시詩
①  송설부보환조 送偰符寶還朝   -하을지
통일統一의 공功을 이루어 사해四海가 밝았거니,        混一功成四海淸
성사星使의 광채가 동영東瀛을 비추누나.               使星光彩照東瀛
돌아가는 배에 실은 것 다른 물건 아니네,            歸舟所載非他物
다만 이 삼한三韓 상하上下의 정情일러라.               秪是三韓上下情
  주; 설부보偰符寶 - 명나라 사신 부보符寶 설사수偰斯守
② 동방同榜 안지상安止常이 청천군菁川君에게 보낸 시詩
 
  광주 촌장에서 강화 만호 동년장원同年壯元 하을지에게 부쳐 드림
         廣州村莊寄呈江華萬戶同年壯元河乙沚
 
삼경三徑에 돌아오니 워낙 궁한 내 살림                 三徑歸來本自窮
휘영청 밝은 달 아래 줄 없는 거문고 하나               無絃琴在月明中
일찍이 보검寶劍 지녔으나 감춰두니 뭣에 쓰리           早持寶劍藏何用
질그릇 술병 있어 비잖으면 그만일세                    只要窪罇飮不空
제비새끼는 둥지를 떠나 여윈 대竹에 앉아 있고          乳燕辭巢拳瘦竹
풀 벌레는 철節에 놀라 풀 포기 속에서 찍찍대네         草蟲驚節咽深叢
즐거운 마음으로 뜰의 나무 보느라니                    怡神久眄庭柯立
우수수 모자에 가득한 바람 시원하구나                  可快凄然滿帽風
   주1, 휘영청 밝은 …… 거문고 하나 : 도연명陶淵明은 음곡音曲을 모르는데도 무현         금無絃琴 하나를 마련해 두고 항상 어루만지며, “거문고의 취미만 알면 되지,         어찌 반드시 줄을 퉁겨 소리를 내야 하느냐.” 하였다.
   주2, 즐거운 마음으로 …… 보느라니 :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뜰의 나뭇가          지를 보고 ‘유쾌하다.’는 구절이 있다.
   주3,『동문선』에 安止常이라고 되어있으나, 安止常은 菁川君 하을지가 박충좌와 이         천 밑에서 장원급제 할 때 亞元한 安吉祥과 同一人으로 추정된다.
③ 목은 이색이 청천군 하을지河乙沚에게 보낸 시詩
 
  • 계림雞林 윤尹 하 장원河壯元에게 받들어 부치다.
일찍이 청천 군문에 재직한 건 알거니와       當日菁川擁碧油
경주 의풍루로 옮겨간 줄은 몰랐소이다        不知移向倚風樓
병중의 세상일은 지루하기 그지없는데         病中世事悠悠甚
남녘 강산 바라보니 또 가을이 다가오오       南望江山又欲秋
  주; 하장원河壯元은 충혜왕忠惠王 복위 5(1344)년 문과文科에 장원한
      하을지河乙沚공을 가리키고, 청천菁川은 진주晉州의 고호이다.
 
• 강주 원수江州元帥 하장원河壯元이 편지와 함께 선물을 보내 준 데 대하여 받들어 사례하는 시를 대서代書하면서 붓을 달려 쓰다.
기러기가 줄을 지어 또 북으로 날더니       雁影相聯又北飛
두어 줄의 서찰이 사립문에 떨어지네        數行書札落柴扉
투호하는 곳에 비파를 퉁기지 말게나        琵琶莫弄投壺處
달 밝은 강주에 눈물이 옷에 가득하리       月白江州淚滿衣

가지 위에 꽃 날린 걸 몇 번이나 봤는고      幾見落花枝上飛
봄바람에 깃발들이 원수를 옹위하누나        春風旌旆擁黃扉
더디어라 공이 한 번 용두회 마련하여        遲公一辦龍頭會
백발에 다시 금루의를 들어 보는 것이        白髮更聞金縷衣
 주1, 하을지공은 강화 만호江華萬戶, 전라도도원수全羅道都元帥, 계림 원수雞林元帥 등       을 역임했으나, 강주江州는 어느 곳을 가리키는지 분명하지 않다.
 주2, 투호投壺하는 …… 가득하리 : 백거이白居易가 일찍이 강주 사마江州司馬로 좌천       되었을 적에 어느 날 분강湓江의 포구浦口에서 손님을 전송하다가 한 여인이 타       는 구슬픈 비파琵琶 소리와 함께 그의 슬픈 처지에 관한 얘기를 듣고 깊이 감동       을 받은 나머지 ‘비파행琵琶行’을 지어서 그에게 주었는데, 그 ‘비파행’에 “심양       의 강 머리서 밤에 손님 전송할 제, 단풍잎 갈대꽃 위에 가을바람 쓸쓸도 해라,       비파 소리 듣고 누가 눈물 많이 흘렸나, 이 강주 사마의 푸른 적삼이 흠뻑 젖었       네.[潯陽江頭夜送客 楓葉荻花秋瑟瑟……就中泣下誰最多 江州司馬靑衫濕]”라고       한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곧 하을지가 강주 원수로 있기 때문에 강주 사마       인 백거이에 비유한 것이다.
 주3, 용두회龍頭會 : 고려 때 문과文科에 장원한 사람들끼리만 모여 베풀던 연회宴會       이다.
주4, 금루의金縷衣 : 곡조曲調 이름이다. 당唐나라 때 금릉金陵의 소녀少女 두추랑杜秋       娘이 15세에 이기李錡의 첩妾이 되었는데, 그가 일찍이 이기李錡를 위해 사詞를       지어 노래하기를 “주군께 권하노니 금루의를 아끼지 말고, 모름지기 젊은 시절       을 아껴야 하리. 꽃이 피어 꺾을 만하면 바로 꺾어야지, 꽃 없는 때에 빈 가지       만 꺾지 마소서.[勸君莫惜金縷衣 勸君須惜少年時 花開堪折直須折 莫待無花空折       枝]”라고 하였다.